나의 작품 속 공간은 의지적으로 행복과 만족감을 채워 넣는 유토피아다. 본인은 현실의 변화와 두려움, 욕망, 관계에 의한 좌절 등, 현대인이 느끼는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따른 고통에 주목한다. 이러한 감정은 작가 개인의 경험과 맞물려 일종의 대상을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형태로 치환시키고 스스로의 공간에 배치하여 정원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이 정원은 나에게 완벽한 요새이며 통제되는 세계이고 고통을 희생시키고 다른 형태로
환생시키는 일종의 낙원과도 같은 곳이다.
나의 유토피아에서는 고통은 희생되고 다른 형태로 재탄생된다. 기다림을 딛고 환생한 백일홍이 그러하며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조망하는 어해도가 그러하다. 작가는 전지적 시점으로 유토피아를 바라보며 이러한
시선의 비대칭성은 작가를 한시적 권력자로 만든다.
제우스의 아버지인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삼켜버리는 속성 때문에 괴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는 시간의 속성에 대한 상징으로 크로노스가 장정이 된 제우스에게 속아 형제들을 대 토해냈을 때 그는 신의 왕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의 속성은 변화에 있다. 유한한 존재는 변화하고 결국 부재한다. 크로노스가 삼켜버리듯이 시간은 모든
것을 삼키고 부재를 만들어 낸다. 나의 유토피아에서 시간의 속성에 의존한다. 공간 속의 대상들은 자치의
상징을 가진 아이콘들이지만 작가의 의도에 의해 재해석된 대상으로 작가의 2차적 가공물이다. 이 가공화된
형태들은 작가가 의도한 상태에서 천천히 시간과 함께 존재하며 그 흐름 속에서 산적되고 처음의 힘(고통)을
상실한다. 현실에서 만나는 고통과 두려움의 상태를 가공하여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스스로의 공간에서
주체가 “좋아할 만한” 형태로 치환되어 산적해 간다. 작가 본인은 오랫동안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도상들에
매료되었으며 이들은 개인적 경험을 기반한다.
언젠가 뉴스에서 사고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 유족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평범한 일